상법 ‘이사 충실의무’ 확대 움직임에 재계 “법·경영혼란 초래”
한경협, "미·영·독·일 주요국은 ‘이사 충실의무’ 회사로 한정" 주주간 이해 충돌시 소송 남발·경영 불확실성 가중
[한스경제=조나리 기자]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하자 경제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상법 제382조의3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넓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추가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법상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규정이 ‘K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주주 피해 발생시 이사의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다. 반면 재계에선 이사에 대한 소송이 빗발쳐 기업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역시 법 개정이 선언적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인정 여부 검토’ 보고서를 통해 10일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모범회사법과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의 회사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했다. 일각에선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들어 주주가 포함된 사례로 제시하지만, 이는 ‘회사의 이익이 주주의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현행법 체계상 이사가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 권 교수는 “상법상 이사는 주주총회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 회사의 대리인으로, 보수 또한 회사가 지급한다”라며 “이는 민법상 위임의 법리와 수임인(대리인)의 선관의무를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사 상대로 막대한 소송 제기 우려
경영상의 문제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소수주주는 배당 확대나 당장의 이익 분배를 요구하는 반면 지배주주는 이익을 회사에 장기간 유보할 것을 주장할 수 있다. 이처럼 주주 간 이해충돌을 이사가 합치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사가 다양한 주주들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할 것을 대비해 회사가 임원배상책임보험을 들 경우,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상승될 것이란 주장이다.
다수 주주가 공동출자해 설립한 주식회사 경영권은 ‘자본 다수결 원칙’에 따라 출자 비중이 높은 주주가 주로 갖는다. 자본 다수결 원칙이란 주식회사는 주총에서 1주 1의결권 원칙에 따라 모든 주주가 보유한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하고 다수결에 의해 안건을 결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개정안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 함은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뜻이 달라도 이사가 소수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소수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보유 지분보다 과대평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대주주의 지배권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도 회사의 지배권에 대해 “특정한 주주가 보유하는 이사의 선임을 통해 경영진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직접결의에 의해 회사의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연구를 수행한 권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장은 현실화시킬 수 없는 이상적 관념에 불과하다”면서 “이를 상법에서 강제할 경우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경영판단을 지연시켜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