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럭비가 간다 ④] '럭비 전문 트레이너' 변우진 "노동 아닌 훈련을 하게 돕죠"

2022-03-22     이정인 기자
변우진 7인제 럭비 대표팀 의무 트레이너. /임민환 기자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주입식 교육, 강압적 지도가 통하지 않는 시대다. 코칭스태프의 주관적인 '감'에 의존하는 비과학적이고 주먹구구식인 훈련법도 선수들에게 외면 받기 쉽다. 정신력을 강조하며 스파르타식 훈련을 요구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지도자들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으로 선수들의 경기력을 극대화하려 한다.

찰리 로우(57) 감독이 이끄는 럭비 7인제 대표팀도 지난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법을 도입해 성과를 냈다. 강한 체력 훈련과 과학적인 피로 회복 시스템의 덕을 본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2021 아시아 럭비 세븐스 시리즈에서 준우승하며 17년 만에 7인제 럭비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한국 럭비의 선전, 그 뒤에는 '숨은 공신'들이 있다. 변우진(31) 대표팀 의무 트레이너도 그 중 한 명이다. 대표팀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도록 물심양면 도우며 '숨은 조력자' 노릇을 한다.

경희대에서 체육학과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그는 2016년 럭비 대표팀 트레이너로 입사해 럭비계와 연을 맺었다. 이후 국내 7인제 실업 럭비팀 서울스컬스에서 체력코치로 일했고, 지난해 다시 대표팀으로 돌아와 의무 트레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변 트레이너는 대표팀에서 남창수 SC(Strength&Conditioning) 코치, 김재홍 트레이너와 함께 선수들의 훈련과 컨디션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변 트레이너는 "대학 졸업 후 헬스 트레이너 생활을 했다. 그러다 스포츠팀에서 일하고 싶어서 럭비 대표팀 어시스던트 트레이너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해서 지금까지 럭비계에서 일하고 있다"며 "럭비는 온몸을 쓰는 종목이다. 무릎 어깨, 팔꿈치, 골반 등 우리 몸 모든 부위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부상 나오는 부위가 다양하다. 트레이너 임무가 다른 종목에 비해 중요하다"고 전했다.

변우진 7인제 럭비 대표팀 의무 트레이너. /임민환 기자

한국 럭비는 지난해 '키다리 아저씨' 최윤(59) OK금융그룹 회장이 대한럭비협회장으로 부임한 이후 확 달라졌다. 최윤 회장은 '럭비를 인기 스포츠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럭비 저변 확대와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쓴다. 지난해 2020 도쿄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은 7인제 대표팀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암흑기 시절' 지원 부족으로 대표팀에서 '1인 다(多)역'을 소화해야 했던 변 트레이너에겐 기분 좋은 격세지감이다. 그는 "예전에는 감독님과 저 단 둘이 국제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다. 그때는 매니저와 통역 일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로우 감독을 비롯해 코치 2명, 트레이너 2명, 매니저까지 스태프가 7명으로 늘었다. 스태프가 많아지면서 분업화 잘 되고 있다. 테이핑 등 물품 지원도 예전보다 많아졌다. 이럴 때 성적을 더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변우진(오른쪽) 7인제 럭비 대표팀 의무 트레이너가 GPS 장비로 측정한 선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변우진 트레이너 제공

럭비 대표팀은 현재 다양한 스포츠 과학 장비를 훈련에 활용하고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비와 캐터펄트 (Catapult)가 대표적이다. 변 트레이너는 "장비들을 이용해 훈련 세션당 총 뛴 거리, 높은 스피드로 뛴 거리, 분당 뛴 거리, 심박수, 트레이닝 로드 등을 측정한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모든 스텝들에게 데이터를 전송하고, 피드백을 진행한다"며 "과학적인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선수들이 이 훈련을 왜 해야 하는지 알고 할 때와 모르고 할 때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아무 의미 없이 훈련하면 그건 노동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쿄올림픽 때 우리의 약점은 체력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단체 훈련 못했고, 그동안 체력 훈련 효율성이 낮았다"며 "과학적인 트레이닝의 효과가 두바이 월드컵 예선전에서 나타났다. 다른 나라만큼 체력 수준 올라왔다. 체력뿐만 아니라 럭비에 필요한 순간 가속력, 감속 등 순발력에 관련된 부분은 앞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 다가오는 시즌엔 스포츠 과학 장비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훨씬 더 과학적인 트레이닝과 회복이 가능할 것 같다"고 알렸다. 

훈련의 강도와 질 만큼 회복의 중요성도 강조되는 추세다. '잘 쉬는 것'도 경쟁력이 됐다. 변 트레이너는 "이번 월드컵 예선전을 준비하면서도 세션당 1시간 이상 운동한 적이 없었다. 운동 시간에 집중하는 게 아닌 운동 부하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또한 운동 후 회복에 중점을 맞췄다. 운동과 회복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과거엔 무조건 훈련량이 많으면 잘할 것이란 인식이 있었지만, 운동과 휴식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고 소신을 밝혔다.

현재 '럭비 전문 트레이너'의 길을 걷고 있다. 럭비에 대한 애정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는 월드럭비 에듀케이터(강사)로도 활약한다. 국내 최초로 월드 럭비(World Rugby) 메디컬 에듀케이터와 SC에듀케이터 자격증을 동시에 취득해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는 대부분 의무 트레이너가 없다. 현실적으로 트레이너를 쓸 여건이 안 돼서 선수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관리를 잘 받지 못한다"며 "어린 선수들이 유소년 시절부터 부상 예방법과 과학적인 훈련을 접해야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유소년 지도자들과 강습회, 강의, 토론을 통해 도움을 주고자 한다. 한국 럭비가 발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힘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