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실패 맛본 中 ·日 시장 포기 못하는 사정
현대차 일본 승용차 재도전…기아는 중국 사업 재정비 소비자 인식 개선 위해 브랜드 포지셔닝 재정립 필요
[한스경제=김정우 기자] 현대차그룹이 부진을 면치 못했던 중국·일본 시장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전기차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시기에 현지 브랜드 입지를 강화하고 앞선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복안이다.
현대차는 8일 일본 도쿄 오테마치 미쓰이홀에서 간담회를 열고 일본 승용차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2009년 말 철수한 이후 13년 만이다. 현대차는 그동안 일본에서 버스 등 상용 부문 영업만을 유지해왔다.
현대차는 2001년 일본에 진출했다가 실적 부진으로 2009년 버스 등을 제외한 대부분 사업을 철수하는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이 기간 현대차의 일본 내 총 판매량은 약 1만5000대 수준에 그쳤다.
과거 현대차는 주행 성능 면에서 유럽차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고 품질과 정숙성 등은 일본차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만큼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에서는 기아가 재도약의 시동을 걸었다. 기아는 지난 7일 현지 합자사 둥펑위에다기아의 지분 구조 개편을 진행, 올해를 중국 사업 반등의 원년으로 삼아 공격적 마케팅 활동을 펼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번에 둥펑차 지분(25%)을 장쑤위에다그룹이 인수하면서 기아와 장쑤위에다그룹이 각각 50% 지분을 소유하는 구조가 됐다.
기아는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이른바 ‘한한령’ 여파로 중국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16년 65만대에 달했던 판매량은 2020년 22만대, 2021년 12만대로 급감했다. 현대차그룹 전체 판매량도 지난해 47만7282대로 월평균 판매량(3만9700대)이 2016년(14만9200대) 대비 26%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지 시장 점유율도 2.7%로 축소됐다.
또한 현대차·기아는 중국에서도 고급화 경쟁에서 유럽산 프리미엄 브랜드를 따라잡지 못했고 오히려 빠르게 경쟁력을 갖춘 현지 브랜드의 공세에 시장을 내줬다.
기아는 오는 4월 베이징모터쇼에서 신규 사명을 발표하고 마케팅 전략을 가다듬을 예정이다. 중국에 출시하는 신차에 안전·신기술 사양을 대폭 적용해 상품성을 높이고 카니발, 스포티지 등 글로벌 전략 모델을 주력 모델로 삼는다. 또 내년 전기차 EV6를 시작으로 매년 전기차 신차를 출시해 2027년까지 총 6종의 전용 전기차 풀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미 실패를 맛본 중국과 일본 시장에 재차 도전하는 이유는 브랜드 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일본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도 자명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실패를 만회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일본 혼다를 제치고 점유율 5위에 올랐으며 유럽 등 다른 주요 시장에서도 고급화 브랜드 제네시스와 전기차 등을 앞세워 시장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글로벌 상위권 완성차기업 궤도에 올랐는데 유독 중국·일본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전기차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하는 현지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의 추격까지 허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때문에 기존 대비 공격적인 상품 전략과 영업을 통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보다 상징적인 이유가 크다. 글로벌 시장에서 추격 대상이었던 일본 브랜드와 현지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될 경우 그간 후발주자였던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일본 소비자 벽을 넘기 위해서는 전기차 시장에 먼저 진입한 기회를 살려 브랜드 인식을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현지 기업들의 거센 공세에 맞서기 위해 보다 공격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하는 입장이며 일본의 경우 시장 특성을 고려해 당장의 판매 실적보다 현지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전환해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은 일본 승용차 시장 진출을 알리는 간담회에서 “지난 12년간 현대차는 다양한 형태로 고민을 계속해 왔다”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고객과 마주보기로 결심했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