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역행’ 고리 2호기 수명연장...신한울 3·4 인가 이어 논쟁 옮아

한수원, “안전성 평가보고서 제출 못했으나 수명연장과는 별개” 탈핵단체, “고리2호기 폐쇄 절차 밟으면 될 것...수명연장 여지 남겨”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담은 원자력안전법 개정안 준비

2021-04-13     양세훈 기자
고리원전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한스경제=양세훈 기자]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다시금 흔들리고 있다.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에도 불구하고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수명연장 논란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앞서 신한울 3·4기에 대한 공사계획인가기간 연장에 이어 설계 수명 40년인 고리 2호기에 대한 수명연장 불씨가 여전히 남게 되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한수원 등에 따르면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원전이 설계 수명을 연장해 계속 운전하려는 경우 주기적 안정성 평가보고서를 설계수명 만료일 2년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고리원전 2호기 설계수명 만료(2023년 4월 8일) 2년 전인 지난 8일까지 주기적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자연스럽게 폐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한수원은 주기적 안정성 평가를 제출하지 않은 것과 수명연장 신청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수원은 감사원이 요구한 '경제성 평가 지침'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안전성 평가를 먼저 진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한수원은 경제성 평가 지침을 마련한 뒤 종합적으로 여러 사안을 검토한 후 안정성 평가 보고서 제출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단 감사원 경제성 평가로 시간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수원은 지난해 11월 원안위에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 여부의 결정 기한을 1년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정해진 기한 내에 주기적 안정성 평가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재연장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원자력안전법 제118조(벌칙) 조항에는 제23조 2항(주기적 안정성 평가 제출)을 위반한 자는 벌금 300만원 이하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처럼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은 정부의 에너지전환로드맵에 따라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정책에 위배된다. 특히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8·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폐로가 반영된 내용이다 보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역행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부와 한수원은 지난 2월에도 신한울 3·4호기의 공사계획인가기간을 2023년 12월까지 연장한 바 있다. 사업 재개가 아닌 한수원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차기 정부에서 언제든지 건설 재개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반핵 단체들은 “‘신규원전건설 금지’,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며 “한수원이 정권교체 이후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원전을 폐쇄할 때마다 한수원은 수명연장을 시도해왔다”며 “안정성 평가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리 2호기는 자연스럽게 폐쇄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사업자가 노후원전 수명연장을 신청할 수 없도록 하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3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까지 10기 원전이 수명이 만료될 예정에 따라 수명연장 시도를 근본적으로 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핵 단체들은 “앞으로 한수원이 노후 원전에 대한 수명연장 시도를 할 수 없도록 정부는 하루빨리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의 내용을 담은 법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노후원전 안전조사 태스크포스(TF)’와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회’는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없도록 원안위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수명 연장 절차를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반면 정의당은 설계수명 만료 즉시 원전 폐로를 의무화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하고 조만간 개정안 발의에 나선다.